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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팡vs패트 30화 이후입니다.
* 연애 중이라기 보다 썸을 타는 느낌으로 봐 주시면 어울릴 것 같습니다ㅠㅠ

 

 [[우미카가 프렌치 토스트를 배우겠다고 난리를 치다가 태워 먹었어요]]
 [[완전 숯덩이라 먹지도 못하고 버림ㅋㅋㅋㅋㅋ 내가 만드는 게 나음ㅋㅋㅋㅋㅋ]]

 메신저 화면에 사진으로 올라온, 새까맣게 탄 프렌치 토스트는 흰 접시 위에서 더욱 가련해 보였다. 사진으로 보기에도 이건 못 먹는 음식이다. 아마 카이리 군이 신나게 놀렸겠지. 뺨을 부풀리며 골을 내는 우미카와 맑은 목소리로 웃으며 도망 다닐 카이리의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나왔다. 나는 어떤 사진을 보내 주어야 할까, 케이치로는 핸드폰 사진집을 뒤적이며 얕은 고민에 빠졌다. 식사는 사무실 식당에서 해서 그다지 보여줄 만한 것은 못 된다. 동료들 사진은 재미가 없겠지. 역시 조금 전 순찰 중 찍어 놓은 높은 건물 사진 정도다. 잘 찍었는지 자신은 없었지만, 그나마 오늘 찍은 사진 중에서는 제일 나았다. 건물 외벽에 비친 노을 색이 예뻐서이려나.

 [노을이 지는 걸 보니 내일도 맑을 것 같다. 몸조심하고 하루 마무리 잘 하도록.]
 [[케이쨩도 조심하고 갱글러 나오면 후라이팬에다 태워버려요ㅋㅋ 굿나잇]]

 갱글러는 프렌치 토스트가 아니야. 물론 토오마 군의 프렌치 토스트는 굉장히 맛있지만. 케이치로는 가볍게 웃으며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이제 잘 시간이다.
 온천 마을에서 우연히 만난 며칠 뒤, 일하는 시간에 메신저로 사진 폭탄이 날아왔다. 일전에 함께 불꽃놀이를 했을 때와, 온천 마을에서 찍은 사진들이었다. 불꽃놀이 사진은 사쿠야가 보내 줘서 몇 장 가지고 있었지만 온천에서는 사진을 남기지 못했다. 그 날 가져간 핸드폰은 공무용으로 빌린 것이었고 사진 찍을 정신도 없었으니까. [카이리 군이라도 찍어서 다행이야], 라고 답장을 보내 주었더니 한참 뒤에 [[케이쨩 바보멍청이]]와 화가 잔뜩 난 표정의 귀여운 캐릭터 아이콘이 돌아왔다. 실수했나 싶어 동료들에게 내용을 보여주니, 다들 갸웃거리는 와중에 노엘만이 묘한 표정으로 좀 더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 보는 게 좋겠다고 충고했다. 말을 주고받느라 길고도 짧게 지나간 그 날 밤 메신저의 결론은 [[케이쨩 그럼 나 앞으로도 메신저 보내도 돼요?]] 였고 케이치로에게는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설마 매일 말을 주고받게 될 줄은 몰랐지만. 
 다음날 오후, 회의 시간이 지나고 무심결에 집어 든 핸드폰에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자신이 찍을 때만 해도 심홍빛으로 물들어 있던 건물은, 한낮의 파란 하늘을 가득 품고 있었다. 태양 끄트머리가 걸쳐 반짝거린다. 왠지 카이리 군의 웃는 얼굴 같은 느낌이구나, 의식의 흐름에 깜짝 놀라 케이치로는 허둥지둥 사진을 뒤따라 온 말을 읽어 보았다.

 [[낮에 가다 있길래 찍음요ㅋㅋ]]
 [그렇군. 우리는 같은 곳에 있었던 거구나.]

 생각보다 빨리 말이 튀어 나갔다. 기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순식간에 ‘읽음’ 표시가 떠올랐다. 하지만 카이리의 대답은 없었다. 디너 타임이라 바빠진 건가. 식당 일은 언제 바빠질지 모르는 거니까, 언제 사건이 터질지 예측할 수 없는 경찰 일처럼.
 답변은 대여섯 시간 정도 뒤, 케이치로가 침대 주변을 정리하고 있을 때 돌아왔다. 이번에는 굉장히 귀여운 검은 색 강아지 사진이었다. 품종은 잘 모르겠지만 태어난 지 몇 달 되지 않은 것 같다. 자그마한 입으로 카이리로 추정되는 손에서 들꽃을 물어가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걸까. 역시 친화력이 남다르다.

 [[오늘 만난 쿠로! 케이쨩 완전 닮음ㅋㅋㅋㅋㅋ]]
 [강아지와 친해지다니 좋은 일이야. 나도 순찰할 때 강아지나 고양이를 자주 본다. 예쁜 사진이다. 마음이 따뜻해져.]

 역시 답변은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바쁜데 괜히 자꾸 보내나 싶어 대답을 독촉할 수는 없었지만 시선이 자꾸 액정 쪽으로 흘러갔다. 카이리 군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어제도 쥬레에서 만났는데. 오 분 정도 뒤에 돌아온 것은 팔다리를 배배 꼬는 그림 이모티콘이었다.

 [[뭐야 케이쨩 오늘 되게 감성적ㅋㅋㅋㅋㅋㅋㅋ]]
 [그런가. 항상 좋은 사진들이지만, 오늘 사진이 특히 예뻐서 그만.]

 아무래도 말을 잘못 한 건가. 내일 사쿠야에게 물어볼까, 이런 부분은 사쿠야나 노엘이 잘 알 것 같은데. 자기 전 떠오르는 생각 속에 단골 가게 종업원의 분량이 조금씩 늘어난다. 언제부터였더라. 밤길에 방황하던 모습을 마주쳤을 때부터였을까. 아니면 그 후 맑게 웃는 얼굴로 되돌아왔을 때인가.
 한 번에 두 가지 생각을 못 하는 자신이지만 마음의 흐름이 하루하루 거세진다. 같은 곳에서 스쳐 가는 다른 일상을 공유하는 일이 이렇게 즐거운 거였구나. 동료가 아닌 사람과 일이 아닌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이야깃거리가 될 만한 주변의 조각을 발굴하는 것도, 사진이 아니라도 하루의 일을 반추해 나가는 것도. 이런 느낌 미처 몰랐는데. 시민의 안전을 지켜나갈 때와는 다른 따스함이 마음을 채운다.
 자신은 이런 고양감을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 걸까. 상대도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면 즐거운 걸까. 자신이 조금 더 말재간이 있다면 좋았을 텐데.

 [[ㅇㅇ갠차나여 사진 칭찬이니까ㅋㅋㅋㅋㅋ 감사욥]]
 [[담에 우리 가게 오면 서비스로 커피타드림]]

 글쎄, 카이리 군 커피는 아직 사람이 마시기에는 너무 이른 맛인데. 하지만 성의를 무시할 수는 없다. [기대하겠다.]고 짧게 말을 남기고, 케이치로는 눈을 감았다.
 내일 너는 나에게 무슨 말을 해 줄까. 내 하루를 무엇으로 새로이 채워 줄까. 가물어 가는 의식 속으로 옅은 기대가 섞여들었다.
 

***


 그날 커피는 환상적이었다. 정확히는 커피가 아니라 커피를 마신 사람의 반응이.
 케이치로는 한 입 마시고 왠지 물을 뒤집어쓴 고양이처럼 안절부절못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눈이 마주쳤을 때 카이리는 모르는 척 방글방글 웃어주었고 케이치로는 세상에 다시 없을 처량한 강아지 같은 표정으로 남은 커피를 퍼붓듯 들이마셨다. 뭐야 갱글러랑 쾌도 앞에서는 그렇게 으르렁대면서 날뛰는 사람이! 맛없으면 그냥 없다고 하지! 회의 소집 콜이 오지 않았다면 맛이 어땠는지 꼬치꼬치 캐물어 볼 수 있었을 텐데.
 갱글러도 없는 하루가 너무 길었다. 일 할 때 어지간해서는 핸드폰 안 보는 거 알고 있지만, 그래도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다. 나 말이지 이렇게 기다리고 그러는 쾌도 아니거든?! 케이쨩이 알면 당장 체포하러 올 만큼 나~쁜 짓 생각하느라 엄청 바쁜 몸이거든요?
 느리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허우적대다 겨우 메시지를 받은 시각은 저녁 아홉 시 반쯤이었다. 작고 까만 강아지가 뛰어다니는 사진이 누군가 보아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냐면 다리 부분이 흐릿했기 때문이다. 동영상으로 찍는 편이 나았을 텐데! 설마 동영상 찍어서 보내는 방법도 모르는 거 아냐? 카이리는 낄낄 웃으며 침대에 몸을 내던졌다. 조금 기다리고 있으려니 문자 덩어리가 한 번에 떠올랐다.

 [[오후 순찰을 하다 쿠로를 만났다. 사진만큼 귀여웠다. 츠카사가 굉장히 예뻐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화났다고 생각하겠는걸. 맞춤법도 한자도 정확하고, 문장도 딱딱하다. 메신저로 보내는 문자마저 고지식한 게 케이쨩답기도 하고.

 [그치그치 짱귀엽죠]
 [[카이리 군 말이 생각나서, 나와 닮았냐고 물어보았더니 츠카사에게 혼이 났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야 진짜 웃겨! 그걸 또 물어보고 있어! 그러면 당연히 다들 아니라고 하지! 카이리는 낄낄 웃으며 좁은 침대 위를 뒹굴었다. 추가로 폭소하는 이모티콘 다섯 개 정도 보냈더니 [[안 닮은 건가?]]라는 답이 되돌아왔다. 진짜 예측을 할 수가 없다니깐.
 메신저 트기를 잘했지, 이렇게 재미있는 것도 매일 보고.
 그 날 사진 폭탄을 보낸 것은 순전히 화풀이였다. 온천에서 본의 아니게 너무 큰 빚을 졌고, 그만큼 빚을 얻었다. 며칠간 머리를 싸매도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직접 찾아가 멱살을 잡고 짤짤 흔들어버릴 수도 없다. 그러다 그 날 찍은 사진을 발견했고, 확 지워버릴까 하다가 문자폭탄이나 보낼까 하고 모조리 다 보내 버렸다. 그랬더니만 생각하지도 못한 답장이 오고, 포인트를 잘못 받은 답변에 열 받아서 대꾸를 한참 하다 보니 어느새 [케이쨩 그럼 나 앞으로도 메신저 보내도 돼요?] 라고 보내 버렸다. 나 바보 아닐까?
 하지만 이 사람 진짜 재밌다고. 
 고지식하고, 예능감 없고, 아저씨 취향이고, 촌스럽고. 메신저로 이모티콘도 못 쓰고 동영상도 못 보내고 유행어도 하나도 모르고. 그런데 이상하게 재밌어. 이야기하면 할수록 놓을 수가 없단 말이야. 말을 걸면 꼬박꼬박 답 정도는 해 줄 거라 예상은 했었지만 이렇게 성실하게 말을 걸어올 줄은 몰랐다. 심지어 가끔 되게 사람 마음 직격하는 말도 날리고 말야. [[우리는 같은 곳에 있었던 거구나.]]라니 도대체 뭐야. 다음에 거기 가면 또 생각날 것 같단 말야. 식료품 사러 사흘에 한 번은 지나다니는 길인데.

 [[그리고 커피 잘 마셨다.]]
 [거짓말쟁잌ㅋㅋㅋㅋ 나 토오마한테 원두 버렸다고 등짝맞았는뎈ㅋㅋㅋㅋㅋㅋ]
 [[하지만 나를 위해 직접 내려준 거지? 고맙다. 그 마음만으로도 기뻐.]]
 [맛있다는 이야기는 안하고 막ㅋㅋㅋㅋㅋㅋ]
 [[ㄱㅡ그거ㄴㅇㅏㅣㄴ고]]

 아니 그런 뜻이 아닌데요! 개그에 진심으로 매달리면 진짜 웃기잖아! 
 당황한 건지 대답 대신 사진이 몇 장 올라왔다. 커피잔이 너무 작거나 초점이 안 맞거나, 심지어 손가락 끄트머리까지 빼꼼히 올라와 있는 게 가관이다. 다음번에 오면 사진 찍는 법이라도 알려 줄까. 케이치로라도 쉽게 쓸 수 있는 사진기 어플리케이션을 몇 개 생각해보며 휘휘 넘기다 보니 마지막 사진이 올라왔다. 이번 사진은 의외로 잘 찍혔다. 누가 찍어준 건가, 싶었지만 의외로 다른 사람들 손이 다 나와 있는 걸 보니 케이치로 스스로 찍은 것 같다.
 테이블 위의 커피잔, 그리고 잔 너머에 서서 이쪽을, 그러니까 사진 쪽을, 사진을 찍는 케이치로에게 시선을 주는 자신. 뭐야 케이쨩 이런 구도로도 찍었었어?! 난 언제 저런 표정을 지었던 걸까, 왜 저렇게 바보같이 실실 웃고 있대.

 [담에 오면 토오마제 푸딩 드림ㅋㅋ 잘자요ㅋㅋㅋㅋㅋ]
 [[기대하겠다. 푹 쉬고, 내일도 즐거운 하루 보내기를.]]

 화면을 꺼 버리려다가, 손이 붙들린 듯 마지막 사진 쪽으로 향했다. 무심결에 저장까지 누르고 나서야 실실 웃음이 나온다. 우와, 뭐 이런 사진을 찍은 거야. 다음에 가게 오면 도촬이라고 놀려 줘야지. 그러면 케이쨩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부끄러워할까, 아니면 당황할까. 
 놓을 수 없는 소원으로 빡빡한 시간의 한구석을 따뜻한 것이 조금씩 채워나간다. 케이쨩도 그래 줬으면 좋겠어. 의무감으로 시민을 대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나랑 이야기하는 게 재밌어서 답해 주는 거였으면 좋겠어.
 좋은 것으로만 차오르는 마음을 심장에 꼭꼭 눌러 담으며, 카이리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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