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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라는 것은 이따금씩 그 날 하루의 기분을 좌지우지 하곤 한다. 예를 들어 기분 좋은 꿈을 꾸었다면 하루 종일을 기분 좋은 채로 있을 수도 있었다. 반대라면 기분이 안 좋은 채 하루를 마감하겠지. 그리고 지금, 고토 신타로는 이 기분 나쁜 꿈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아무에게도, 심지어 그 꿈의 중심에 있던, 제 옆에서 잠들어있던 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그저 입을 다물었다. 머리가 아프다. 꿈은 꿈일 뿐이라고 떨쳐내기에는 제가 너무 불안했다.

“고토 씨.”

저를 부르는 사토나카의 목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든 고토는 기분 나쁜 꿈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었다. 앞선 걱정이라고,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스스로를 달래보려고 하지만 잘 되지는 않는다. 사토나카의 얼굴이 어둡다. 무슨 일 있어?

“다테 씨가 다치셨대요.”
“뭐?”

제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고 그렇게 빌었건만, 알고는 있었지만 오늘도 예상대로 신은 제 편이 아니었다. 고토는 사토나카의 다음 말을 기다리며 겉옷을 챙겨 나갈 준비를 한다. 병원 이름을 전화로 들은 사토나카가 일러주기 무섭게 고토가 회장실 밖으로 뛰쳐나간다. 얼마나, 어떻게? 그런 것들을 물을 시간도 없었고, 정신도 없었다. 오토바이에 올라탄 고토가 지금 정신으로 할 수 있는 건 그저 어떻게 되었는지 직접 가서 확인하는 길 뿐이었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 다른 얘기는 안 듣고 그냥…….”

뭐, 어떻게든 되겠지. 사토나카가 수화기를 내리고 고토가 지나간 자리를 치운다. 회장실 문도 하나 닫지 않고 그냥 나간 그에게 무어라 할 수는 없기에 그저 한숨을 쉬며 문을 닫는다. 아무도 없는  공간, 사토나카는 전화 내용을 곱씹어보며 역시 알려줄 걸 그랬나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고토는 이미 오토바이를 타고 재단 밖을 나가고 있었으니까.
병원으로 향하는 길이 이렇게나 멀었던가. 따로 보호자도 없고, 연락처라고 해봐야 제 연락처나 재단 전화밖에 없었을 것이다. 고장이 나서 오늘 아침 수리를 맡겼던 제 핸드폰을 떠올리며 오늘 정말 되는 일 하나 없다고 괜한 데 화풀이를 해보기도 했지만 달라질 건 없다. 고토는 속도를 올려 병원으로 빠르게 도착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 말고는 별 다르게 생각나는 방법도 없었고, 늦으면 늦을수록 제 걱정만 늘어날 뿐이었기에 늦고 싶지도 않았다. 조금만 더, 병원이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초조하다.

“어디 있지.”

응급실로 달려온 고토는 쏟아지는 환자들 사이에서 다테를 찾을 수가 없었다. 바쁜 것 같아 차마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을 수도 없어 불안함만 커져간다. 정말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면 어쩌지. 크게 다친 거라면? 대체, 대체 어디 계세요.

“고토?”

숨 막히는 몇 분이었다. 찾지 못한 그 시간은 일 분이 한 시간과 같았다. 불안함이 커져, 정말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나는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그 무렵에 들린 다테의 목소리에 이미 불안감에 휩싸여 조금만 툭 친다면 눈물도 나올 것 같았던 고토가 뒤를 돌아 그의 목소리가 나는 곳을 눈으로 찾는다. 다테 씨.

“어떻게 알고 왔어?”
“다테 씨…….”

팔 한 쪽에 붕대를 감고 있는 다테를 보자 확실히 느낀 것은 이 꿈이 좀 과했다는 것, 그리고 큰일이 나지 않아 다행이었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묻고 싶고, 이 불안감을 빨리 다 떨쳐내고 싶은데 말이 떨어지지 않아 다테의 물음에도 채 대답을 못 해주고 있었다. 입 안에 맴도는 말이 너무 많은데.

“고토, 무슨 일 있었어?”

저는, 저는요. 무슨 일이 생기신 줄 알았어요. 사토나카가 다쳤다고 알려줬을 때 온 세상이 하얘지는 것만 같았어요. 세상이 다 무너질 것만 같았어요. 불안했고, 무서웠어요.
뱉어내지 못한 말들이 고토의 입 안에 머문다. 머물고 있는 이 말을 뱉으면 전부 무너질까, 그렇게 되지 않겠지만 만약에 정말로 무너진다면? 사실 이 모든 게 꿈이라면? 당신이, 다테 씨가 사실 정말 큰일이 생겼다면?
자신이 없다.
불안감이 여전히 고토를 감싸고 있었다.

“고토.”

고토의 두 눈에 초점이 없는 것 같은 것은 기분 탓일까. 붕대로 감겨 움직이지 않는 한 쪽 팔을 붙잡고 다테가 고토를 일단 안아본다. 고토, 왜 그래. 달래듯, 다독이듯.

“걱정 했었어?”
“네…….”
“고토 걱정을 너무 많이 시키는 것 같네, 앞으로는 좀 조심해야겠다.”

부디 그래주세요. 무너지는 건 꿈속에서 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그 밤에 꾼 꿈속에서 고토는 다테가 죽어가는 걸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꿈이라는 걸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는데도 고토는 아팠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자신이 너무 싫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왜 그는 저렇게 무너졌는지, 왜 자신은 그런 다테를 보고 있으면서도 구하지 못했는지. 누구를 탓해야 했는지, 누구에게 화를 내야했는지. 꿈속에서 고토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왜, 왜 하필 그런 꿈이었는지도 모른 채로 그저 아파하고만 있었다. 아침이 되어 눈을 뜨고도 고토는 한참을 꿈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불안감이 그를 감싸는 순간이었다.
고작 그 꿈 하나가 자신의 하루를 이토록 처참하게 만들 수도 있구나, 그 꿈의 주인공이 다테인 게 제게는 큰 의미로 다가왔는지도 몰랐다. 다른 이였다면 이것보다는 조금 덜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보지만, 다테가 주인공이던 그 참담한 순간은 꿈이라고 해도 지워지지 않는다. 정말 언제인가는 이렇게 되어버릴지도 모른다고, 그게 너무 무서웠다.

“울지는 않네. 돌아볼 때 표정이 딱 울 것 같아서, 울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안 울어요.”
“울고 싶은데 참고 있는 건 아니고?”

다테의 말에 고토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왜인지 정곡을 찔린 것만 같았다.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아니, 나는 그냥 울고 싶으면 울어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다음 말을 하지는 않는다. 그 표정이, 돌아볼 적에 울 것만 같았던 그, 건드리면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만 같았던 그 표정이 다테의 눈앞을 가린다. 지금 뱉어내면 한숨이 너무 짙어질 것 같아 다테는 애써 삼키고, 그 대신 다음 말을 뱉어낸다.

“병원이라 그런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아, 내가 그 생각은 차마 못 했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품에서 고토를 풀어낸 다테가 손을 붙잡고 원무과로 향했다. 계산만 하고, 조금만 기다리라 말하는 다테의 목소리에 조금은 안심했다. 불안감이 조금씩 녹아간다. 
지금 눈앞에 서 있는 다테는 제가 아는 그 다테 아키라다. 사라질 리도 없고, 무너질 리도 없다. 하물며 나를 두고 갈 리도 없다.

“가자, 집에.”

고토의 손을 붙잡은 다테의 한 쪽 팔에는 여전히 붕대가 감겨 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고토가 묻지 않는다. 붙잡은 손이 왜인지 따스하다.

“어디 가지 마세요.”
“어, 뭐라고?”

걸음이 멈춘다. 다테는 고토를 돌아보며 다시 물었다. 뭐라고 했어? 못 들었고, 솔직히 말하자면 다시 정확하게 듣고 싶었다. 제가 들은 말이 정말 맞는지, 아니면 제 착각인지.

“무서웠어요. 무슨 일 생기셨을까, 정말 저 두고 어디 갈 것만 같아서요.”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다테는 다만 고토의 행동들을 곱씹으며 그래서 네가 그렇게 불안하다는 듯이 행동했구나,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여전히 멈춘 걸음, 바람이 불었다.

“꿈이 너무 생생해서, 그래서 정말 꿈이랑 같은 일이 벌어졌나 싶었어요. 그래서 너무 불안하고 무서웠어요. 눈앞이 새하얘지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고─”
“그만. 고토, 그만해. 그만해도 돼.”

붙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제가 사라질까 겁이 났던 고토의 방어였을지도 모른다. 고토를 부르는 다테의 목소리가 떨린다. 네가 나를 이렇게나 생각하고 있었고, 내가 너를 불안하게 만들었구나.

“미안해.”

나는, 모든 게 다.

“불안하게 만들어서, 네 세상이 무너질까 겁나게 만들어서.”

잡고 있는 고토의 손에 짧게 입을 맞춘 다테가 고토를 다시 바라본다.
너는 이렇게나 불안했구나. 내가 네 세상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는데, 홀로 맹세했는데, 나로 인해 네 세상이 무너질 뻔 했다는 게 너무 잔인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불안감이 녹는다. 그 불안감이 만들어낸 작은 올가미도 금세 사라진다. 고토는 그의 약속을 믿기에 그 작은 올가미를 풀어낸다. 그 불안감은 금세 다시 사랑으로 변해간다.

“더 할 말은 없어?”
“무슨 할 말이요?”
“뭐……, 뭐든 말이야.”

글쎄요. 고민하던 고토가 한 걸음 앞으로, 다테의 코앞에 선다. 신발 끝이 닿는다. 아슬아슬한 거리였다. 발끝을 들어, 다테에게 짧게 입을 맞춘 고토가 다테의 말에 대한 대답을 이어간다.

“사랑한다는 말이요?”

그 짧은 입맞춤에 웃음이 나고 만 다테가 고개를 숙여 다시 짧게 입을 맞췄다.

“그 말까지 포함해서, 하고 싶었던 말 전부.”

글쎄.

“사랑해요.”

그리고…….

“죄송해요. 별 것도 아닌 일로 다테 씨 기분까지 안 좋게 만든 것 같아서.”

그 말에 또 금세 기분이 둥 떠오른다. 다테는 이토록이나 제 기분에 관여하는 고토의 행동 하나, 말 하나를 무시할 수 없었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별 것도 아닌 일이라고 생각해, 나 같았어도 불안했어.”
“그렇지만, 걱정 끼친 것도 사실이잖아요.”

붙잡은 손에 다시 한 번, 입을 맞춘다.

“그 걱정 끼치는 것까지 포함해서 고토를 좋아하니까 됐어, 괜찮아.”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감동도 했고, 내가 세상이라는 말이잖아? 다테는 그 말을 하지는 않고 숨겨둔다. 마음으로, 감동은 오래 간직해야 좋은 법이다.
고토는 다테의 마지막 말을 조금 곱씹어 보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다테 씨. 응?
꼭 맞잡은 두 손이, 집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노을이, 세상 가장 불안했을 오늘을 보상해주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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