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밋치!”
미츠자네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미츠자네의 등 뒤에서 잭이 밝게 웃으며 미츠자네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잭의 모습에 미츠자네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 모습에 잭은 빠른 걸음으로 미츠자네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반가운 마음에 가고 있던 미츠자네를 붙잡은 건 좋았지만, 정작 미츠자네의 앞에 서니 말이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잭은 미츠자네의 앞에 서서 쭈뼛거리고 있었다.
***
한 달 전, 잭은 미츠자네에게 고백을 했다. 미츠자네는 잭의 고백에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미츠자네는 승낙과 거절 중 어떤 답도 내리지 않았다. 그저 조금만 시간을 달라고 말할 뿐이었다. 며칠이 지나도 미츠자네는 잭의 고백에 답을 내리지 않았다. 잭은 그저 미츠자네의 침묵이 에둘러한 거절이라고 지레 짐작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불과 며칠 전, 미츠자네가 잭을 불렀다. 고백에 대해 대답을 하겠다는 이유였다. 약속 장소에 도착한 잭도 미츠자네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두 사람 모두 죄라도 지은 것처럼 땅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고백….”
올 것이 왔다. 그렇게 생각하며 잭은 미츠자네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말끝을 흐리는 모습에 잭은 한껏 긴장한 채 다음에 나올 말을 기다렸다. 미츠자네의 대답이 하루 이틀 늦어질 때마다 거절당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심 속으로는 미츠자네가 거절하지 않을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잭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정리되지 않은 모순적인 감정들이었다.
“…너만 괜찮다면 지금이라도 받아들여도 될까?”
“어?”
당황한 듯한 잭의 모습에 미츠자네는 잭을 보고 있던 시선을 돌렸다. 이미 한참 전에 받은 고백이었지만, 마음의 정리를 핑계로 고백에 대한 답을 내리는 걸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좋아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관계가 끝나서 더는 아무것도 아닌 관계로 바뀌는 것이 무서웠다. 잠깐을 위해 친구였던 잭을 잃고 싶진 않았다.
“아냐, 미안해. 못 들은 거로 해 줘.”
하지만 자신이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하는 사이 잭은 마음의 정리를 끝낸 모양이었다. 미츠자네는 그렇게 생각했다.
“잠깐만, 밋치 미안한데 다시 말해 줄래?”
미츠자네의 복잡한 속내처럼 잭도 머릿속이 복잡한 건 마찬가지였다. 거절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미츠자네가 고백을 받아들이자 잭은 자신의 귀를 먼저 의심했다.
“미안해?”
“아니, 아니. 그 앞에!”
잭의 반응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미츠자네는 잭의 말에 대답했다. 그런 미츠자네의 모습에 잭은 더 초조해하며 자기가 제대로 들은 게 맞는 지 확인하려 했다.
“너만 괜찮다면 지금….”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잭이 미츠자네의 몸을 끌어안았다. 갑작스레 끌어 안겨진 미츠자네는 당황했지만 작게 ‘다행이다.’라고 중얼거리는 잭의 목소리에 자신도 잭의 몸에 팔을 둘렀다.
“미안, 갑자기 안아서.”
조금 시간이 흐른 후, 이성을 되찾은 잭은 머쓱해하며 사과의 말을 건넸다. 미츠자네는 괜찮다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있었지만 두 사람 모두 귀 끝이 불타는 것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
고생 끝에 사귀게 된 건 좋았다. 하지만 원래 바빴던 미츠자네와 최근 이상할 정도로 일이 많아져 바쁘게 지냈던 잭은 기껏 사귀게 된 게 무색하게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래서는 꼭 장거리 커플 같잖아…!’
잭은 같은 도시에 살고 있어도 쉽게 만날 수 없는 자신들의 처지를 떠올리며 속으로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마침 그러던 때에 미츠자네의 뒷모습이 보였고, 반가운 마음에 이름을 부르고 그 앞으로 간 것까진 좋았다.
‘뭐… 뭐라고 말하면 좋지?!’
잭은 혼란에 빠졌다. 두 사람이 사귀기로 하자마자 꼭 짜기라고 한 것처럼 둘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우연히 만나게 된 게 연인인 채로, 처음 만나는 날인 셈이었다.
“괜찮아?”
“어, 응! 당연하지!”
한참을 쭈뼛거리고 있던 잭에게 미츠자네가 걱정스러운 듯 물어보았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올려다보는 미츠자네의 얼굴에 잭은 멍하니 넋을 놓고 있다가 곧 이성을 되찾고 대답했다. 잭의 대답에 미츠자네는 다행이라고 말하며 작게 미소 지었다.
“저기, 잭. 혹시 이번 주말에 시간 있어?”
“밋치 부탁이면 없는 시간이라도 만들어야지.”
미츠자네의 물음에 잭이 장난스럽게 답했다. 미츠자네는 잭의 말에 장난치지 말라고 응수했다. 한 번쯤은 장난을 받아줘도 좋으련만 한 번도 받아주지 않는 미츠자네에 잭은 내심 섭섭함을 느끼면서도 한 편으로는 미츠자네답다고 생각했다.
“알았어. 이번 주말은 시간 괜찮아.”
“그럼 주말에 데이트하지 않을래?”
***
“어쩌면 좋지?”
잭은 심각한 표정으로 페코의 맞은편 의자에 앉으며 페코에게 물었다. 요 근래 봤던 잭의 모습 중 그 어느 것보다 심각해 보이는 잭의 모습에 괜히 페코도 긴장에 빠졌다.
“무슨 일 있어?”
페코의 물음에 잭은 살롱에 오기 전까지 있었던 일을 순서대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잭의 이야기에 처음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반응해주던 페코도 점차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점차 표정이 사라지더니 결말을 들을 때에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뭐야! 결국 밋치랑 데이트한다는 소리잖아!”
페코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건너편에 앉아 있는 잭을 쳐다보고 있었지만, 잭은 여전히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에 빠져 있었다. 심각하기만 한 잭의 모습에 페코는 걱정스러운 듯이 물어보았다.
“문제 있어?”
“어떻게 데이트를 해야 할까?”
페코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괜히 없는 두통마저 생길 것 같은 기분이었다.
***
잭이 고민하는 것과 무색하게 괜찮은 데이트 계획은 세우지 못한 채, 결전의 날이 밝았다. 잭은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약속 장소로 나갔다. 아직 약속 시간까지는 꽤 시간이 남아 있음에도 이미 약속장소에는 미츠자네가 도착해 있었다.
“미안해, 기다렸어?”
“내가 일찍 나온 건데.”
약속 시간까지는 30분도 더 넘게 남아 있었다. 둘 다 첫 데이트인 만큼 상대방을 안 기다리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일찍 온 결과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약속을 좀 더 빨리 잡을 걸.”
“그러게.”
잭은 괜히 어색해질 거 같은 분위기에 장난스럽게 말했다. 무시하거나 장난치지 말라고 했을 미츠자네지만 오늘은 잭의 농담 아닌 농담을 받아주었다. 잭과 미츠자네는 고개를 돌려 상대방을 쳐다봤다. 그렇게 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았다. 그리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뭐 약속시간보단 빠르긴 하지만 지금부터 움직일까?”
잭의 말에 미츠자네는 알겠다고 말하며 잭의 손 한쪽을 잡았다. 갑작스러운 미츠자네의 스킨십에 잭은 놀란 눈으로 미츠자네를 쳐다보았다. 이렇게 미츠자네가 먼저 스킨십을 해올 줄은 전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곧 놀람은 기쁨으로 바뀌었다. 잭은 미츠자네의 손을 강하게 맞잡았다.
보통 데이트라고 하면 할 법한 같이 밥을 먹는다와 같이 걷기 정도는 평소에도 자주 하는 행동들이었다. 하지만 데이트라고 이름 지은 순간부터 평소와는 다른 특별한 행위가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공원을 걷던 중에 잭의 크레페를 파는 푸드 트럭이 잭의 눈에 들어왔다.
“밋치 크레페 먹을래?”
미츠자네의 시선이 잭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곳을 향했다. 분명 푸드 트럭을 보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킨 거지만, 오히려 미츠자네의 눈에는 푸드 트럭보다는 잭의 손가락에 시선이 갔다.
‘손 예쁘네.’
미츠자네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기가 저 손을 잡고 걸었다고 생각하니 괜히 얼굴에 열이 몰리는 것 같았다.
“혹시 크레페 한 번도 먹어본 적 없어?”
“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무런 반응이 없는 미츠자네를 보고 잭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갑작스런 잭의 말에 정신을 차린 미츠자네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잭을 쳐다보았다.
“도련님이라 길에서 파는 간식은 안 먹어 봤을 줄 알았어.”
미츠자네의 반응에 잭은 웃으며 말하고는 크레페를 주문하러 가버렸다. 그 대답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지 미츠자네는 뚱한 표정으로 주문을 하고 있는 잭을 쳐다보고 있었다. 잭은 혼자 놔둔 미츠자네가 신경 쓰이는지 주문하면서도 계속 미츠자네 쪽을 쳐다보았다. 그 모습에 미츠자네는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