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롭다. 더 이상 할말이 있을까. 다이치는 컴퓨터의 마우스를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괴수의 출현도 뜸하고 다른 일도 별로 없는 지금은 무료한 느낌이 날 정도로 평화로웠다. 일거리가 많지 않아 휴식 시간을 받은 지오의 동료들은 저마다 조용히 자신들의 할일을 하고 있었고, 다이치도 얼마 없는 일을 끝마치고 멍하니 있었다. 그러다보니 다이치는 한 순간 엑스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저기 두리번거렸는데도 눈에 들어오는 모습은 대원들의 평화로운 모습 뿐이었기에 엑스가 보고 싶어진 다이치는 엑스를 찾으러 마우스를 놓고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걸었다.
울트라맨 엑스. 빛의 거인.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놓는 이름.
그 이름, 그 울트라맨을 좋아하고 있다.
엑스를 찾아다니며 다이치는 문득 이전의 사건이 떠올라 살며시 웃었다.
신장 45미터인 엑스는 2미터도 안 넘는 자신하고는 어머어마한 차이가 있기에 가까이서 보는 방법은 엑스가 디바이저안에 들어가거나 유나이트 하는 것 밖에 없었다. 그래서 다이치는 언제나 그 점이 아쉬웠다.
그런데 몇주 전,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사건은 미처 눈치채지 못했을 때 생겼다.
그 날 다이치는 키보드를 두들기며 써야하는 보고서에 한숨을 쉬었고 디바이저 안의 엑스는 끙끙거리는 다이치에게 해야할 일이라면 음악을 들으면서 일을 하면 기분이 더 나아질거라고 조언해주었다.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한 다이치는 엑스에게 고맙다고 한 후 헤드셋을 찾아 푹 눌러 쓴 다음에 신나는 음악을 틀었다. 첫곡은 <銀河の伝説(은하의 전설)>이라는 제목으로 일렉기타소리도 신나고 두명의 가수가 후렴구에서 시원하게 샤우팅하는 부분이 좋아 종종 듣고 있는 곡이었다. 엑스의 조언대로 기분이 나아지고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지만 헤드셋에서 울리는 곡의 소리가 큰 바람에 정작 엑스의 애타는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작업을 마치고 헤드셋을 빼고서야 디바이저의 부재를 알게 된 다이치는 당황해서 서둘러 책상의 밑도 보고 주변도 뒤져봤지만 어디에도 엑스는 없었다. 다급해진 다이치는 지나가던 아스나에게 소리치다시피 물었다.
“아스나, 엑스 못봤어? 내 책상에 디바이저를 뒀는데 사라졌어!”
“아, 엑스 말야? 루이가 한 30분 전에 네 디바이저 가져가겠다고 말하고 가져갔잖아. 엑스가 너 애타게 부르던데. 지금 연구실에 있을 걸?”
너무나 간단하고 명료한 아스나의 대답에 다이치는 맥이 탁 풀렸다. 루이가 말하고 엑스가 부르는 소리를 못 듣다니. 아스나는 '루이 목소리 못 들었나보네 연구실 한번 가봐. 지금쯤 엑스도 마무리 했을걸.' 이라고 말하며 할일을 마저 하러 지나갔다.
마무리? 다이치는 아스나의 말에 의문을 가지며 서둘러 연구실로 향했다. 엑스가 있던 디바이저를 누가 가져간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했던 자신에게 자책감이 들어 ‘설마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실험하는건가, 해부해봤다면 어떡하지?...’등의 다급함이 만들어낸 쓸데없는 오만가지 걱정을 머리속에 떠올렸다.
하지만 걱정과는 다르게 도착했을 때는 믿기지 않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루만 박사의 ‘성공이다-!’란 연이은 외침과 함게 신나게 주변을 뛰어다니는 루이, 정신없이 움직이며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는 마모루의 모습이 보였지만 그 주목의 대상이 되는 엑스의 모습에 다이치는 입을 닫지 못하고 눈도 감을 수 없었다.
엑스가 인간의 크기로 작아져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며 놀람 반 신남 반인 엑스는 다이치를 보자 활기차게 말했다.
“다이치! 드디어 나도 너만큼 작아졌어, 역시 지오의 기술력은 대단해! 정말 신기해, 디바이저 안에서만 보이던 공간이 이렇게 입체적으로 보이고 있는데다가 다이치를.. 다이치를 이렇게 가까이서 볼수 있게 되었어!”
한껏 들뜬 엑스의 목소리에 다이치는 천천히 엑스에게 다가갔다. 떨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엑스와 마주섰다. 자신보다 살짝 작은 엑스. 목이 아플정도로 올려다보는 엑스가 아니라 살짝 숙여서 보는 엑스였다. 평소와는 많이 다른 엑스를 보는 알 수 없는 이 마음이 이상했다. 다이치는 손을 천천히 움직여 엑스의 볼에 가져다 대었다. 사람의 체온보다 살짝 낮은, 하지만 따듯한 느낌. 가까이서 바라보는 빛나는 레몬색의 들뜬 눈. 고개를 살짝 내리면 바로 눈앞으로 다가오는 깊은 푸른빛의 컬러타이머.
아아, 다이치는 깨달았다. 이 알 수 없는 마음은 기쁨이었고 남 몰래 그토록 원했던 것이었다. 엑스랑 마주보는 것.
엑스가 웃었고 다이치도 웃었다.
다이치는 엑스를 끌어안았다.
엑스도 다이치를 끌어안았다.
품안에 안겨오는 따듯한 느낌이 정말 좋았다.
그루만 박사는 방위대 기업비밀이라며 끝끝내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루이나 마모루도 안된다며 입을 닫고 알려주지 않았다. 한가지 확실한건 전력이 많이 소모된다는 점이었다. 왜냐하면 루이가 울트라맨 제로도 이렇게 작게 만들어 달라고 했다가 박사에게 전기가 많이 들어가 대장이랑 부대장에게 혼난다고 해서 실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사는 엑스가 사람크기만큼 작아지는 옵션이 추가 된 방식이라 디바이저 안에도 들어갈 수 있고, 유나이트도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형식이라고 말했다. 꽤 오랫동안 준비해 왔기에 긴시간 모습을 유지해도 엑스에게 부작용은 없을 거라고도 덧붙였다.
그 후 플라잉 머스캣티를 타고 정찰에서 돌아온 하야토랑 와타루도 엑스를 반기며 놀라워했다.
대단한 소식에 모두가 시끌시끌했던 그 하루동안,
다이치는 엑스의 손을 계속 잡고 있었고 어떻게 하면 엑스랑 같이 휴일날 재미있게 놀러다닐지 고민을 했었다.
그런 시끌벅적했던 일을 떠올리고 다이치는 다시 한번 박사에게 감사했다. 물론 울트라맨 연구도 활발하게 만들자는 취지에서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겠지만 스쳐지나가듯이 말했던 작은 바램을 기억하고 들어주었다.
꽤 긴 시간동안 두리번거리며 엑스를 찾았지만 엑스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지금쯤 열심히 지오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지오의 모든 사람들과 이야기 하고 있다면 분명 마주쳤을 텐데.
다이치는 건물 밖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지오의 건물 가까이에는 작은 공원같은 느낌의 잔디밭이 있다. 볕도 잘 들고 들꽃도 간간히 보이는 이 곳은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아 한적한 곳이다.
이곳을 찾은 다이치는 어렵지 않게 벤치에 앉아있는 엑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엑스! 여기 있었던거야?”
“어, 다이치구나. 일은 다 끝난거야?”
“응, 빨리 끝났는데 너가 안보여서 한참 찾았다고.”
“아.. 연락이라도 할걸 그랬네. 미안.”
다이치는 ‘별로 사과할 것도 아닌데’ 라고 하며 엑스 옆에 다가가 앉았다. 다이치가 물었다.
“왠일로 밖에 나왔어? 보통은 지오안에 있었잖아.”
“지금은 외부 사람들도 거의 다니지 않는 시간대이기도 하고 날씨도 좋아서 산책 겸 나와보고 싶었어.”
“그렇구나. 날씨 좋을 때는 기분전환이 필요하지.”
“응. 좋다...내 원래의 크기로는 이런 기분을 느끼지 못했으니까.”
“알 것 같아.”
“다이치랑 같이 있어서 그런가, 더 좋은 것 같아.”
“윽, 갑자기 훅 들어오지 말라고, 두근거리잖아.”
“난 그저 좋다고 말한건데.”
벤치에 가만히 앉아있는 엑스는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을 즐기고 있었다. 미소가 어린 은빛의 얼굴. 무릎위에 가만히 포개놓은 붉은 두 손. 보기만해도 마음이 포근해진다. 상냥한 목소리와 함께 따스한 햇빛은 다이치의 기분을 푸근하게 했다.
함께 있으면 단 둘이서 하고 싶은게 왜 이리 많이 생각나는지. 휴가를 받기도 전에 갈 곳을 생각하게 된다.
“엑스, 우리 휴가 받으면 어디로 놀러갈래?”
“음..다이치가 가고 싶은 곳이면 난 어디든 괜찮아.”
“언제든지 원하는 데로 말해줘. 엑스가 원하는 장소가 있을 것 같은데.”
“정말 괜찮을까?”
“응, 어디라도 좋아.”
“..M78. 다이치에게 빛의 나라를 보여주고 싶어.”
“빛의..나라? 내가 가도 괜찮은거야?”
“응.”
“내가 가도 괜찮다면 다행인데...왜?”
엑스는 조금 뜸을 들이다가 설렌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러 울트라맨들에게...다이치가 내 파트너...연인이란걸 알려주고 싶어서.”
“엑스..!”
생각도 못했을 이야기에 더 반전인 의미를 꺼내는 엑스. 사귀게 된 후 부끄러움의 영향으로 미미한 애정표현만 하던 엑스가 종종 이렇게 드러내는 뚜렷한 표현 때문에 다이치는 얼굴이 빨개질 때가 많다.
“이지스의 힘을 사용하면 금방 갈 수 있을거니까... 시간이나 체력 부담은 없을 듯 해.”
“우와...M78이라...분명 멋질 것 같아. 얼른 휴가 일정 알려달라고 부탁드려야겠다. 그런데...막상 가면 나 부끄러워서 숨어버릴것 같은데.”
“거기 가면 다이치 100%로 길 잃어버릴거라서 어색해도 숨으면 절대 안 돼. 숨게 놔두지도 않을거고.”
“오..그래? 그럼 만약 길 잃어 버리면... 제로씨에게 부탁하면 되려나? 엑스보다 더 빨리 지구로 데려다 줄지도...?”
“...안 갈래.”
엑스가 약간 삐졌다. 다이치는 가벼운 장난에도 질투하는 엑스가 귀여워서 바로 꼭 끌어 안아주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하하, 알았어. 그럼 이거 해주면 M78가서 가만히 있을께.”
“엣, 모,못해..”
“안해주면...어쩔 수 없고.”
다이치가 볼을 톡톡 건드리자 엑스가 머뭇거리다가 빠르게 다이치의 볼에 닿았다 떨어졌다.
잠깐이지만 생생한 감촉은 다이치의 볼에 남겨져있다.
엑스는 날이 갈수록 부끄러워 하는 것 같다. 이마저도 참을 수 없이 귀여웠다. 다이치가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엑스, 요즘 받아주는 횟수가 꽤 많아졌네? 처음에는 부끄러워서 손도 못잡았잖아. 조금 더 당당해져도 괜찮아.”
“하지만 다이치랑 가까이 있으면 가슴이 자꾸 두근거려서 안절부절 못하게 되는 걸.”
“더 가까이 있게 되는 유나이트는 계속 잘 해줬으면서...빛나고 멋있는 빛의 전사가 이렇게 부끄러워해도 되는거야?”
“다이치가 많이 좋으니까.”
“또 갑자기 공격한다, 나까지 부끄러워지잖아..”
엑스가 살짝 고민하다 대답했다.
“사랑하는 상대에게 좋다고 말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접촉은 내겐 아직 적응기가 필요한 것 같아.”
“괜찮아. 그래도 엑스 부끄러워하면서 많이 해주는 걸. 적응기라..그럼 더 많이 해야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나... 일단 엑스가 해줬으니 이쪽에서도,”
다이치는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부드럽게 입술을 엑스의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이미 몇번을 했고 자연스러워질 때도 되었지만 두근두근하고 간질거리는 느낌은 언제나 똑같다. 잠시 머물렀다가 떨어지면 엑스가 고개를 푹 숙였다. 매번 얼굴이 붉어져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
그런 엑스가 귀엽고 사랑스럽다. 너무나 소중해서 다이치는 자신도 모르게 스킨십에 조심스러워진다. 언제까지나 아껴주고 위해주고 싶다.
“엑스, 그럼 슬슬 들어갈까?”
“응, 그러자.”
사랑하는 엑스.
무지개빛 미래에서도 너를 언제나 사랑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