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마스 이브는 언제나 춥지만 사람들은 기대의 열기로 가득 차 있는 날이다.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거나 친구들이나 연인과 함께 하는 즐거운 하루를 준비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따듯한 기대를 안겨주기 마련이다.
츠가미 쇼이치도 마찬가지로 굉장히 들떠 있었다.
“아아, 히카와씨. 살살 하셔야하는데...그건 너무 세게 저으면 다 쏟아지니까 좀 더 조심히 섞어주세요.”
“아, 예...”
크리스마스를 위한 케이크와 각종 음식들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움직이는 츠가미 쇼이치의 모습 뒤로 열심히 케이크 반죽을 젓고 있는 히카와 마코토의 모습이 보인다.
“츠가미, 일단 밀가루 박력분 사왔다. 이거면 충분한건가?”
“아 네네, 맞게 사오셨네요! 역시 아시하라씨.”
“츠가미씨, 이쪽도 끝났습니다.”
“오, 감사합니다. 그럼 일단 그거는 랩으로 싸서 옆에 놔주세요.”
쿠키를 만들 재료를 사온 아시하라 료까지.
늦은 저녁이지만 이른 아침인것 마냥 한창 분주한 움직임이 보이는 남자 셋은 꽤 정신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야, 역시 여러 명이서 다함께 준비하니 속도도 빠르고 더 즐겁네요. 분명 마나짱도 기뻐할 겁니다!”
지금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이들은 몇 시간 앞으로 다가온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것이지만 이번에는 조금 더 의미가 더해졌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던만큼 고생도 많이 한 마나를 위해서 쇼이치와 타이치가 고민하다 제안한 크리스마스 특별 이벤트로, 마나가 눈치 채지 못하게 다른 사람들이 모두 하나씩 하나씩 준비해 온 깜짝 파티다.
약 일주일간 준비해 온 파티를 끝까지 잘 숨기기위해 마나의 숙부인 미스기 요시히코랑 그의 아들 타이치는 지금 마나를 데리고 외식을 겸해서 놀이공원으로 데려간 상태다.
아시하라가 주걱으로 생크림을 휘저으며 중얼거렸다.
“솔직히 왜 하고 있는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만.”
“츠가미씨에게 신세를 졌으니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히카와도 작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히카와와 아시하라는 처음에 쇼이치의 제안을 듣고 고민하는 눈치였다. 아시하라는 좋은 선물을 사면 되는것 아니냐며 사도 되는 케이크를 굳이 만들어야야 할 필요는 없다며 거절했다. 히카와도 크리스마스 이브까지는 근무가 있기 때문에 시간을 내지 못 할 것 같다는 눈치였다.
시무룩해졌던 쇼이치. 하지만 그는 배추를 기른다고 포기를 할 사람인가. 아기토회의 모임 활동으로 크리스마스 준비를 하자는 이야기와 기뻐할 마나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냐며 열심히 설득했다. 원래부터 한가했으며 쇼이치의 절절한 부탁을 결국 못 이긴 아시하라는 도와주기로 했고 히카와도 상부에서 기적적으로 휴가를 주었다는 소식을 오자와 관리관을 통해서 듣고 쇼이치를 돕기로 했다.
그리하여 지금 따끈하게 만들어질 케이크에 얹을 예쁜 색의 생크림이 만들져어가고 있다. 쇼이치도 케이크 반죽을 오븐에 막 넣었다. 이제 귀여운 장식만 준비하면 제일 중요한 과제인 케이크 만들기는 끝난다.
쇼이치가 히카와를 불렀다.
“히카와씨, 저번에 샀던 여러가지 과자들 좀 꺼내주세요.”
“과자...말입니까?”
“기억 안나세요? 그저께 같이 장보러 갈때 샀었잖아요?”
“아 그거 말입니까. 까먹고 있었네요.”
“역시 히카와씨 불안하네요. 기억상실이었던 저도 그 정도는 확실히 기억한다고요.”
“크흠...기억났으니 상관없지 않습니까. 과자는 어디다 두었습니까?”
“저쪽 선반이요. 잘 부서지니 조심해서 꺼내주세요.”
“이 정도는 당연히 쉽게 꺼낼 수 있습니다. 사람 무시하지 말아주세요.”
“무시하는게 아니라 걱정되서 그러는건데..그게 히키와씨 종종 문제 만들잖아요.”
“걱정하실 필요 없다니까요...우왓!”
히키와가 선반에서 과자를 꺼내며 바구니를 편하게 잡으려 했지만 그만 한 쪽 손이 바구니를 잡지못해 바구니가 기울어지며 과자가 와르르 쏟아졌다.
결과는 당연히 대참사. 아시하라도 쇼이치와 히카와의 늘 있는 만담이려니 하고 신경쓰지 않고 묵묵히 주어진 일만 집중했지만 술술 나오는 만담처럼 술술 쏟아지는 과자의 소리에 깜짝 놀라 그 둘을 쳐다봤다. 곧 시선을 바닥으로 내려 참사의 광경을 맞이한 아시하라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아련해보였다.
아시하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완전히 못쓰겠는데. 히카와, 대체 뭘 한거냐.”
“과자를 꺼내다 바구니를 놓쳐서 그만...”
“히카와씨... 그러게 제가 뭐랬습니까, 조심하시라고 말씀드렸는데...”
“미..미안합니다, 다시 사오겠습니다.”
“어쩔수 없죠..상품 정확하게 사오셔야 해요. 마나짱이 좋아하는 과자 세트라서 다른 거 사오시면 안됩니다?”
쇼이치의 말에 아시하라가 덧붙였다.
“어디서 샀는지 알고 말하는 거냐, 꽤 멀리까지 갔다 왔잖아, 시간 오래 걸릴텐데.”
“괜찮습니다. 오토바이로 가면 금방 갔다 옵니다. 츠가미씨, 오토바이 좀 빌리겠습니다.”
“네네, 조심해서 다녀오시고요.”
그렇게 히카와는 과자를 다시 사러 나갔다.
아시하라와 쇼이치는 바닥에 쏟아진 과자들을 부지런히 치우고 히카와가 돌아올 때까지 잠시 쉬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이야, 식물 키우기나 제과제빵 같이 뭔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과가 나오면 뿌듯하네요. 아기토회의 모임도 모두에게 뿌듯함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활동을 정하는게 좋겠습니다.”
“글쎄...난 지속적으로 하고 싶지 않다만.”
“에이, 어차피 아시하라씨는 시간이 많잖아요. 매일매일 하는것도 아니고 많으면 격주로 적으면 한달로 할 생각이었는데 말이죠.”
“시간문제가 아니라 선호도의 이야기였는데...”
“우리가 언제 선호해서 아기토가 되었나요? 부활동 보다는 훨씬 가볍게 할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으세요.”
“하아...마음대로 해.”
아시하라는 한숨을 쉬며 결국 아기토회 불참을 포기했다. 거절한다 해도 나중에는 쇼이치의 페이스에 휘말리고 말 것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쇼이치는 소파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피며 힘차게 말했다.
“그럼 진행방식에 동의한 겁니다? 자 그럼 다시 일을 시작해 볼까요.”
“...벌써? 아직 히카와가 돌아오지 않았는데.”
“마냥 쉬면서 기다리다가는 시간이 부족해 질거에요! 이제 마나짱도 돌아올 것 같으니 얼른 만들어 놓은 것들 보이지 않게 해놓는 작업도 필요하다고요.”
“좀 더 쉬는게 효율적인 방법일것 같지만...들키지 않게 얼른하고 끝내는게 낫겠지.”
아시하라도 소파에서 일어나던 차에 현관벨이 울렸다.
쇼이치는 마나가 돌아온 줄 알고 순간 긴장했지만 문을 연 아시하라랑 마주친 사람은 머리와 옷에 눈이 보송보송 내려앉은 히카와였다.
“오, 생각보다 빨리 왔네.”
“히카와상 고생하셨습니다, 그런데 눈은 털고 들어오셔야죠!”
“아 그렇죠, 일단 과자부터.”
히카와는 아시하라에게 과자를 건네주고 눈을 털러 문밖으로 나갔다. 쇼이치도 수건을 들고 따라나가 부지런히 털어주었다. 여러번 만난 계절에 여러번 본 눈이지만 세 사람은 눈 내려오는 모습을 자신들도 모르게 가만히 지켜보았다.이렇게 어둑어둑한 배경에서 가로등 불빛에 살살 내려오는 눈을 보는 것은 확실히 다른 느낌이다.
“이야, 눈이 적당하게 오네요.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니 이번 깜짝 파티 아주 좋은 예감이 드는걸요?”
“열심히 했으니 분명 잘 될 겁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나쁘진 않네.”
“자, 오래 있으면 감기걸리니 모두 들어갑시다! 얼마 안 남았으니 끝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몇 시간 후에는 마나는 물론 모두도 즐겁게 웃을 수 있을 것 같아 쇼이치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어느때보다도 모두에게 훈훈한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어느덧 세 사람의 마음에 조용히 따듯한 눈이 내리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