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마스이브인데, 퇴근하고 뭐 하세요?”
내일은 크리스마스라 출근이 없다. 사토나카와도 크리스마스 때는 볼 일이 없을 테니 오늘이 크리스마스 전의 마지막 인사다. 평소 같으면 수고하셨습니다, 라는 인사만 남기고 쏙 사라져 어느새 주차장에서 차를 빼 퇴근하고 있을 사토나카가 일부러 고토에게 발을 맞추며 시답잖은 질문들을 하는지 고토가 모르지 않는다.
“별로 할 일은 없는데.”
“……다테 씨는요?”
사토나카의 물음에 우뚝 멈춰 선 고토가 한숨을 삼켰다. 두 달 넘었어, 연락 안 된 지가.
내일이 크리스마스인데 오지도 않는 연인의 연락을 기다려야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일지 사토나카는 상상도 할 수 없다. 크리스마스라는 특별함과 평범함이 뒤섞인 날짜 속에서 그는 두 달이 넘도록 제 연인의 생사도 모른 채 담담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던 거다. 당장 하루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고토 씨.”
그래서 사토나카는 오늘 이 이벤트를 반드시 성공시키고 싶었다. 고토 신타로가 두 달이 넘도록 제 연인의 생사도 모른 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토나카 에리카가, 그를 돕고 싶었다.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오히려 가끔은 귀찮기도 한 사람인데도, 오늘은 왜인지 돕고 싶었다. 크리스마스이브, 라서일까.
“별로 할 일 없으시면 저랑 어디 좀 같이 가주실래요.”
“묻는 거야, 아니면 명령이야?”
“뭐, 둘 다요.”
직설적이야.
그렇지만 제 대답도 그렇고, 사토나카의 말도 그렇고, 확실히 오늘이든 내일이든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따라가기로 했다. 어디를 갈 건지, 뭘 할 건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별로 위험한 일을 시킬 애도 아니니 별로 물어볼 생각도 하질 않았다. 사토나카의 차를 타고 어디론가 이동하는 길에 창 너머로 본 하늘에는 비행기가 날아가고 있었다. 문득, 보고 싶어졌다. 먹먹해졌다.
아, 저 비행기는 어디를 향하는 걸까. 이번에는 당신이 꼭 살아있길 바라는데, 이 바람도 전부 부질없는 짓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당신과 연락이 닿질 않는다. 이렇게나 사랑하는데, 나는 당신을 생각만 해도 이렇게나 벅차오르는데, 왜 이렇게 아플까.
“고토 씨, 다 왔어요.”
넋을 놓고 비행기를 쳐다보다가 문을 열어주는 사토나카의 얼굴과 마주했다. 뭘 그렇게 넋을 놓고 있냐며 사토나카가 한 소리 했지만, 별로 상관은 없다. 친히 문까지 열어 준 사토나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차에서 내렸다. 고토가 숨을 쉴 때마다 입김이 나왔다.
“이거요.”
“뭐, 뭔데 이게?”
사토나카가 쥐어준 것은 작은 쇼핑백이었다. 멋쩍은 얼굴로 머리를 쓸어내린 사토나카는 크리스마스 선물이요, 하고 차에 올라탔다. 주차하고 올 테니까 공원길 따라 걸으며 공원까지 가 있으라고, 콕 집어서 공원길이라고 했다. 그 말에 의구심을 품으면서도 고토는 순순히 또 공원길로 발길을 돌렸다.
“히나?”
“고토 씨!”
공원길을 따라 걸으며 사토나카가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잠깐 해봤다. 그렇지만 집에서 별로 멀지도 않고, 기다려보고 오지 않으면 그냥 집으로 돌아가자고 생각하며 공원길을 따라 공원까지 반쯤 남았을 때, 히나를 마주했다. 반가운 얼굴로 손을 흔들던 히나가 약간 인상을 쓰며 무어라 중얼거렸지만 너무 작게 말해서 들을 수가 없었다.
“여기는 무슨 일로.”
“이거, 전해 드리러 왔어요!”
목도리를 둘러 준 히나가 마저 갈 길 가라며 손짓했다. 얼떨결에 목도리를 목에 감긴 고토가 여전히 얼떨떨한 눈으로 공원길을 마저 걸었다. 대체 뭐야, 갑자기? 무슨 서프라이즈 이벤트 같은 건가? 반쯤 남은 공원길을 다 걸어 공원에 들어선 고토의 눈앞에 펼쳐진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꽤나 예뻐서 장관을 이루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앞섰다. 비행기도 그렇고, 크리스마스 장식까지 보고 나니 정말로 제 곁으로 돌아오지 않은 다테 아키라가 떠올라서 아팠으니까. 눈물 보일 일이 아닌 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눈물이 터졌고, 멈출 줄 몰랐다. 서러웠는지도, 이렇게나 담담한 척 버티고 있으면서 사실 담담하지 않았는지도. 그래서 고토는 크리스마스라는 걸, 그 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애매한 날이라는 걸 자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고토.”
제 귀에 닿는 목소리가 낯익은 감각을 깨우는 기분이었다. 흠칫 놀라 뒤를 돌았더니 미안하다는 얼굴 표정을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어, 어.
“다테 씨……?”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거짓말이죠. 꿈인 거죠, 저는 공원길 중간에 쓰러져서 꿈을 꾸고 있는 거죠. 그렇지 않고서야 다테 씨가 눈앞에 있을 수가 없는데, 그럴 리가 없는데,
“미안, 오래 기다리게 해서.”
물어볼 게 산더미였는데, 하고 싶은 말도 산더미였는데, 고토는 막상 하고 싶은 말이나 묻고 싶은 말을 해야 할 당사자를 눈앞에 두자 말이 나오질 않았다. 쏟아지는 눈물 때문에 시야가 가려져 다테 얼굴을 제대로 못 보는 것도 억울했다.
“왜……, 왜 이제야 왔어요?”
“미안, 미안해.”
“왜요? 왜 이제야 오신 건데요? 제가, 제가 두 달이 넘도록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는지 상상이나 해보셨어요? 연락도 닿질 않아서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확신할 수 없는 상태였던 저를 생각이나 해보셨어요?”
겨우 울음 너머로 하고 싶은 말들을 쏟아냈다. 다테는 그 질문들을 가만히 듣고, 손을 뻗었다가 멈추길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리고 끝내 거두지 못하고 손을 뻗어 고토를 제 품에 안아주었다.
“핸드폰이 완전 고장 났었어. 연락을 하려고 했는데 하필 연락도 잘 안 닿는 지역에 있어서 못 했고, 더군다나 크리스마스 전에는 돌아오고 싶어서 거의 잠도 쪼개가면서 일을 해서 더 연락을 못 했던 것도 있어. 고토, 네가 그렇게 걱정하고 있었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로 크게 걱정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어.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이 끊어지질 않았다. 미안, 미안해. 미안해, 고토야. 몇 번이나 미안하다는 말을 내뱉은 다테의 목소리에 고토는 숨을 크게 들이 마시고 내쉬며 울음을 그치고 진정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래도 안심했다. 당신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당신 품에 안길 수 있어서. 아주 조금은 영영 이렇게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했었으니까, 이렇게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맞춰서 돌아와서 미안해, 좀 더 일찍 오려고 했는데 안 된다고 말리더라고.”
“……살아있어 주셔서 감사해요.”
“보고 싶었어, 그리웠고. 두 달 동안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몰라서 고통스러웠을 고토를 나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어서 너무 미안하고, 기다려줘서 고마워,”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기다림 속에서도 지치지 않고 나를 기다려줘서.
“죽는 줄 알았어요. 누군가를 기다리는 게 이렇게나 힘든 일인 줄 처음 알았거든요.”
“미안해, 힘들게 해서,”
“알면 좀 잘하세요.”
“하하, 그래야겠지. 좋아, 그럼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선물 하나!”
선물이요? 응, 선물.
선물이라는 말에 고토가 알 수 없는 표정을 내보였다.
“일단 오는 길에 사토나카한테 선물 받았지? 히나한테도 목도리 잘 받았네!”
“에, 이것도 다 다테 씨가 준비하셨어요?”
“당연하지, 서프라이즈 선물이었어. 내가 나타나는 게 제일 서프라이즈 선물이었겠지만.”
“뻔뻔하시네요. 그래도 뭐, 틀린 말은 아니니까 참을게요,”
“고맙네, 참아줘서.”
그래서 선물이라는 건 뭔데요? 일단, 이라고 하시는 걸 보니까 아직 남은 모양이죠?
똑똑하네, 역시 우리 고토야.
“나, 앞으로 해외로 나가는 일은 없을 거야.”
“……정말요?”
얼굴 좀 폈네, 아까까지 울상이었으면서. 고토의 약간 밝아진 얼굴에 다테가 살짝 안심했다. 그리고 다음 말을 이어간다.
“그래서 말인데, 인생을 좀 같이 살아봤으면 해서…….”
“네?”
“그, 고토만 괜찮다면 같이 지내고 싶은데……, 괜찮을까?”
너무 갑자기 서프라이즈라 당황스러운데요.
하지만 싫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한 줌 모래처럼 언제 사라질지 모를 불안함이 마음 한편에 남아 있기 때문에 차라리 같이 지내는 편이 훨씬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추우니까 집에 갈까요, 라고 말하며 고토가 차가운 손을 맞잡았다. 크리스마스이브, 누군가에게는 특별하지 않은 날이고, 고토에게도 불과 몇 년 전까지도 특별할 게 없는 날이었지만 오늘만은 그 어떤 날보다도 특별한 날로 자리 잡았다. 날은 추웠지만 그는 행복했을지도 몰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