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아...이렇게 까지 고독한 크리스마스가 될줄이야...하드보일드한 탐정에게 꽤나 어울리는 날이군.”
말은 이렇게 하지만 쓸쓸한 마음을 숨길 수 없는 하프보일드 쇼타로였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게다가 눈까지 내려서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지금은 눈이 그친데다 적당하게 내려서 돌아다니기 편함은 물론이요, 분위기도 아주 적당하게 만들어졌다. 바람도 살살 불고 있어 그렇게 춥지도 않았다.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쇼타로는 아니었다.
혼자 놀러 나온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쓸쓸해보이는 쇼타로. 설마 탐정사무소 전원이 쇼타로에게 말도 없이 쪽지만 두고 놀러 나가버리다니...쇼타로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아키코에게 전화를 해보는 등 여러 사람에게 연락을 해보았지만 왓쳐맨은 물론 필립조차도 연락을 받지 않았다.
혹시 몰라 쇼타로는 후토 경찰서까지 찾아가 봤지만 보이는건 아침부터 조용한 후토초상범죄수사과의 공간 뿐이었다. 테루이 류는 아키코 때문에 그렇다쳐도 진노형사랑 마쿠라까지 사라진 상태.
다시 터덜거리며 탐정사무소로 돌아온 쇼타로.
“아니 아키코는 매번 돈 없다면서 그렇게 어딜 못 놀러가게 하더니 크리스마스 딱 되니까 나만 쏙 빼놓고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지네! 너무한거 아니냐고!!”
후토 경찰서로의 헛걸음으로 인한 피곤함과 돌아왔을때의 허전함이 더해진 혼자만의 서글픈 외침 후, 쇼타로는 다시 냉정을 찾기 시작했다.
“잠깐, 필립이 내 연락을 받지 않을때는 뭔가에 또 빠져 있는 경우나, 노는데 정신이 팔렸을 경우 둘 중 하나일텐데...일단 단서를 더 찾아볼까.”
쇼타로는 아키코가 쪽지에 어디로 간다는 말을 남겨놓지 않은 점을 주목했다. 쇼타로를 약 올리기 위해 몰래 놀러 갔겠지만 후토에 놀 곳은 한정되어 있다.
“후토의 명소나 유원지 같은데를 찾아가 봐야하나...어디어디 있었더라? 아니지, 아무리 한정되어 있다고 해도 그걸 내가 다 찾아가기엔 무리인데...어?”
쇼타로는 중얼거리다가 화이트 보드에 그려진 어느 약도를 발견했다.
“이건가? 흐음...어, 후토라면? 여기로 갔다고? 정말?”
괜히 약도를 그려놓지는 않았을 것이지만...쇼타로는 이 약도를 따라 갈 것인가 고민했다. 하지만 고독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기는 싫었던 쇼타로는 움직이기로 했다.
라면집 근처까지 왔지만 탐정사무소 멤버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했던 쇼타로는 힘이 다시 빠졌다. 라면집 옆에 조그맣게 빛나고 있는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는 쇼타로의 기분을 더 우울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ᆞ아아, 아무도 없는데 여러 가지로 고생하게 만드네...일단 온 김에 배 채우고 갈까.”
주인 아저씨께 인사를 건네며 의자에 앉은 쇼타로는 라면이 나올 때까지 옆에 누가 앉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멍하니 있었다.
“저도 후토 라면 하나요. 멍때리는거냐,히다리.”
“나는 지금 느끼는 이 감정에 배신감이 있는지 확인하는 중이야...”
“무슨 배신감을 느꼈길래 상태가 그런건가.”
“탐정사무소 모두가 나만 빼놓고 아무 말도 없이 놀러가 버리고, 후토경찰서도 찾아가 봤더니 아무도 없는데 테루이 류우우우우?! 너 왜 여기있어?!”
후토 경찰서에서 보이지 않았던 테루이 류가 쇼타로의 옆에 있었다. 쇼타로는 찾아다니던 사람들 중 한명인 테루이를 생각도 못한 곳에서 만날 줄 몰랐기 때문에 약간의 반가움과 억울함이 섞인 질문세례를 던졌다.
“다른 멤버들은 다 어디간거야? 놀러간거 아니었어? 너 왜 경찰서에 없었어? 연락도 왜 안 받은거야? 아니 애초에 나만 따돌려서 혼자 남겨둔 이유가 뭐야?”
“나에게 질문하지 마. 밥 먹고 나면 바로 후토 타워 쪽으로 가라.”
“뭐? 후토 타워 까지?”
쇼타로의 질문에 대답 없이 테루이는 방금 나온 라면을 순식간에 먹더니 ‘잊지말고 후토 타워로 가라.’라고 간단하게 말하고 훌쩍 나가버렸다. 쇼타로의 라면 그릇만 따듯하게 김이 나고 있었다.
이번엔 기가 막힌 쇼타로였다. 하지만 배는 고팠기 때문에 늦은 아침이자 이른 점심을 먹고 이동하기로 했다. 그래도 테루이를 만났기 때문에 일말의 희망과 안도감이 생긴 걸까. 쇼타로의 쓸쓸함이 담긴 발걸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후토 타워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타워의 웅장함과 거대함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이곳에서 많은 싸움이 있었고 그때마다 모두가 같이 이겨냈다. 후토의 바람도 강하게 불어 힘을 주었다. 그리고 쇼타로의 옆에는 필립이 있었다. 필립이 있어줬기에 쇼타로는 후토를 지켜낼 수 있었다.
잠깐 감상에 빠져 걸어가고 있었던 쇼타로는 정신을 차리고 멀리 서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어, 어? 저기 왓쳐맨 아니야?”
후토 제일의 정보통이자 후토의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저 특이한 헤어스타일. 전화를 하는 것 같은데 쇼타로가 가까이 다가갈 수록 전화하는 목소리가 화난 것 같은 목소리였다. 왓쳐맨은 쇼타로를 보자마자 화들짝 놀라서 전화기에 몇마디를 하고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쇼, 쇼, 쇼짱!”
“너 왜 여기있어?”
“크리스마스잖아, 모처럼인데 휴일을 즐겨야지.”
“아까 전화는 뭐고?”
“아아, 별로 중요한건 아니야.”
“한가하건 그렇다쳐도 그럼 아까 전화는 왜 안 받았어? 뭔 중요한 일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냐고?”
“에이, 진정해, 진정해. 아 맞다, 왜 너만 있어?”
“왜 나만 있냐고? 너희가 나 버리고 놀러갔잖아! 아까 이야기 하려고 했는데 딴길로 새버렸네, 너 같이 놀러간다고 적혀 있었는데 왜 혼자 있냐는 말이야!”
“아이고 쇼짱...말은 그렇게 해도 속상했나봐?”
“당연한거 아니...아니아니 하드보일드는 어떤 일에도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아! 빙빙 돌리지 말고 묻는 말에 답이나 해!”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과는 다르게 쇼타로의 화가 난 목소리에 왓쳐맨은 당황해서 땀을 흘렸다. 때마침 다시 전화가 울렸고 쇼타로가 듣지 못하게 받은 왓쳐맨은 표정이 밝아지더니 고개를 몇번 끄덕이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쇼타로에게 다급하게 외쳤다.
“쇼짱! 지금 당장 후토 타워 바로 근처로 가!”
“테루이도 그렇더니 왜 또?!”
“급해서 그래, 얼른 가던 길 가면 돼! 난 바빠서 간다!”
그렇게 쇼타로는 또 혼자 남았다.
의문만이 남은 쇼타로는 발걸음을 옮기면서 다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지 만난 두 명의 사람들과 사무소 멤버들이 후토 타워로 놀러간 이유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어느새 후토 타워는 고개를 들어야 한눈에 들어오는 크기로 가까이 있었다.
만나면 뭐라고 말할지 고민하던 쇼타로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당연히 옆에서 날아오는 초록색 슬리퍼의 공격도 피할수 없었다.
“따닥-!”
“아얏!”
“쇼타로, 왜 정신 못차리고 멍때리는거야?”
“아키코! 잘 만났다, 너 왜...”
“왜 이렇게 늦어? 잔말 말고 따라와!”
“우왓!”
끌려간 곳은 후토 타워의 바로 밑이었다. 그 밑에는 간이 천막이 있었고 쇼타로가 질문 할 새도 없이 아키코는 쇼타로를 안으로 밀어 넣고 천막 지퍼를 잠갔다. 떠밀려 들어온 천막의 안은 따듯했고 조명이나 소품들도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가운데에는 산타차림을 한 사람도 서 있었다.
쇼타로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바람머리의 남자.
“호호호, 메리 크리스마스, 히다리 쇼타로!”
“...필립?”
“자, 선물. 너를 위한 이벤트.”
싱글벙글 웃고 있는 필립의 얼굴을 보며 어리둥절한 쇼
타로. 영문도 모른 채 필립이 건네준 선물을 얼떨결에 받아든 쇼타로는 꽤 크고 묵직함을 느꼈다. 하지만 선물보다는 지금 왜 필립이 자신의 눈앞에서 웃고 있는건지,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이 쇼타로의 연락도 받지 않은 채 놀러가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고가 정지한 쇼타로는 탐정으로서의 추리가 불가했다.
“나를...위한? 분명 아키코가 쪽지에 놀러간다고 했는데...?”
“그건 내가 생각한 이벤트 장치 중 하나였을 뿐이야. 분명 쇼타로가 찾아올거라 생각하고 만든 거지.”
“에?”
“뭐...원래는 너를 좀 더 많은데를 돌아다니게 하려고 이것저것 생각했었는데, 너가 쪽지를 늦게 발견해서 이동이 늦어지는 바람에 장소 한 곳을 건너 뛰고 바로 후토 타워로 오라고 한거야. 그리고 돌아다니면서 선물을 조금씩 주려고 했는데 쇼타로를 바로 후토 타워로 오게 하는 바람에 시간이 부족해서 선물을 이쪽으로 빨리 갖고 오며 다시 포장하느라 왓쳐맨과 테루이가 고생 좀 했지. 후토라면에서 테루이 만나고 타워 근처로 오면서 왓쳐맨 만났지?”
“어...어...”
예상치 못한 몹시 따스한 분위기에서 자신이 겪었던 일들의 자세한 상황설명을 들은 쇼타로는 이해는 갔지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벤트라고? 아, 아니 왜 굳이 이런 이벤트를...”
“그동안 고생한 쇼타로를 위해서 소소하지만 모두가 고민하고 준비한거야. 지금까지 많은 사건들을 해결해오면서 슬플 때도 힘들 때도 있었지만 쇼타로가 있었기에 후토를 지킬 수 있었어. 모두의 감사가 담긴 이벤트랄까.”
“필립...”
“나도 많이 고마워. 그동안 나랑 함께해 줘서.”
쇼타로는 말문이 막혔다. 모두가 자신을 버리고 갔다는 생각을 한 자신이 후회가 되었고 이벤트를 준비하려고 열심히 움직인 멤버들이 생각나면서 미안함도 들었다. 그동안 모두와 같이 이겨냈던 모든 문제들, 같이 기뻐하고 슬퍼했던 일들이 빠르게 스쳐지나가면서 울컥한 쇼타로는 고개를 숙였다. 지금 앞에서 상냥하게 웃고 있는 필립을 보면 울 것 같은 표정을 들킬 것 같아 모자를 푹 눌러썼다.
감동 받은 쇼타로를 본 필립이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선물은 이쪽에 잠깐 두자.”
“이런 이벤트...하드보일드 해지지 않는다고..”
“나는 하프보일드여도 쇼타로가 좋아.”
쇼타로는 대답없이 겨우 끄덕였다.
어느새 쇼타로의 볼에 여러 감정이 담겨 흐르고 있었다. 쌓여왔었던 것들을 이번 크리스마스에 털어 낼 수 있기를. 필립이 있는 쇼타로의 크리스마스는 내년도 내후년도 계속 쓸쓸하지 않을 것이다.
“바베큐 파티 할건데 얼른 나와!”
밖에서 쇼타로와 필립을 향해 들리는 아키코의 목소리를 포함한 쇼타로 멤버들의 왁자지껄하고 정겨운 목소리.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지금처럼 모두가 있으면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쇼타로는 붉어진 눈가를 문지르며 확신했다.
필립은 쇼타로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눈물을 살짝 닦아 주고 토닥이며 부드럽게 속삭였다.
“메리크리스마스, 쇼타로. 하나뿐인 나의 파트너.”
둘이서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어가는 크리스마스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