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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최대의 휴일―이라고는 하지만 말이다. 신노스케는 다가오는 휴일에도 마음 놓고 편히 쉴 수 없었다. 크리스마스라고 풀어져 버리면 이날 일어나는 범죄와 사건에 빠르게 대처하지 못한다. 그래도, 절로 내려가는 기어를 붙잡기에는 썩 충분치 못한 이유였다. 서 내부를 가득 채운 크리스마스 장식들과 은은히 들려오는 바깥의 캐럴까지. 누가 먼저 말하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감화되어 있는 게 보였다.
 
 “생일이네.”
 
 그러고 보니 크리스마스보다 중요한 게 남아있었다. 사실 말하는 순간도 그 중요한 순간에 포함되었지만 말이다. 오늘은 이젠 선물을 달라 하기도 머쓱한 나이가 되어버린 자신의 생일이었다. 특상과 멤버들과 지냈던 크리스마스가 제일 즐거웠으려나? 괜한 감상에 빠져있기를 수 분. 상념을 깨버리는 시끄러운 서의 전화 소리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급히 출동 준비를 하고 뛰쳐나간 덕분에 책상 위에서 계속해서 울려대던 핸드폰을 알아채지 못한 건 덤이었다.
 출동이라고는 해도 큰 사건은 아니었다. 뉴스에 나올법하지만, 반대로 흔한 사건이기도 한 그런 사건. 소매치기를 하다 도망친 범인을 잡은 의로운 시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것이었다. 우글우글 몰려들어 사건 현장을 빙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덕분에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이곳이 분명히 사건 현장이다. 확신한 신노스케는 동료와 함께 사람들을 해치고 중심으로 향했다.
 
 “좀 비켜주세요. 경찰입니다!”
 “오. 신 형님이잖아!”
 “고우?!”
 
 사람들의 중심에 범인을 붙잡고 있던 것은 낯이 익다 못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놀라서 불러버린 그 이름과 같은 시지마 고우. 그의 하얀 후드와 목에서 반짝이는 고우라는 목걸이까지. 이내 들려오는 큰 웃음마저 단번에 어깨에 주었던 힘을 빠지게 만든다. 범인을 잡은 게 너였어? 머리를 긁적이며 물음을 건네는 신노스케 덕에 고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신 형님을 보러 가다가, 누가 소매치기야! 하고 소리 지르길래 잡았지 뭐야.”
 “오기 전에 연락하랬잖아. 그냥 오면 못 볼 수도 있다고?”
 “전화 했거든요! 안 받길래, 일단 가보려고 했지 뭐.”
 
 이렇게 만났으니까 됐잖아. 범인을 넘겨받아 수갑을 채운 신노스케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공무 집행 중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본능적으로 튀어나오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경찰차에 범인을 태우고 시민들을 해산시킨 그는 고우의 등을 팡팡 두드려주었다.
 
 “잘했어. 라이드 마하 타고 올 거지?”
 “어. 내가 경찰차에 탈 수는 없으니까.”

 고갯짓으로 반대쪽 도로에 세워져 있는 라이드 마하를 의식하게 한 고우는 열쇠를 흔들어 보였다. 알겠다는 듯 먼저 차로 향한 신노스케는 어째선지 모를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차에 시동을 걸었다.
 슬쩍 백미러를 통해 뒤를 볼 때마다 일정한 속도로 자신을 쫓아오는 고우가 보였다. 덕분에 신호에 걸려도 함께, 서에 도착할 때까지 같은 타이밍을 유지할 수 있었다.
 서에 도착해 순찰을 나가는 동료에게 가벼운 묵례를 건네고 범인을 인계한 신노스케는 고우와 함께 휴게실로 향했다.
 
 “그래서? 웬일이야?”
 “신 형님이 보고 싶어서랄까?”
 “보고 싶었으면 매일 왔어야지.”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고우는 졌다는 듯 두 손을 들어 올려 보였다.
 
 “일 언제 끝나?”
 “별일 없으면 정시 퇴근 일 거야. 여섯 시쯤.”
 
 시계를 확인한 신노스케의 말에 고우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태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섯 시에 끝나면 예상대로니까, 끝나고 파티하자. 뜬금없으면서도 알법한 제안이 나오자 신노스케는 흔쾌히 수락의 의사를 표했다. 거절할 이유도 없고 홀로 생일을 보내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빠르게 수락한 신노스케를 보며 고우는 냉큼 핸드폰을 꺼내 들어 열심히 어딘가로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럼 결정 났으니 다른 사람들한테도 말해둘게.”
 
 다른 사람이라고 해봤자 특상과 사람들이겠지. 이야기를 마친 신노스케는 일을 하러 들어가기 전 휴게실 자판기에 동전을 넣었다. 딸그락대는 소리와 함께 음료에 불이 들어온다. 10엔짜리 커피를 두 잔 뽑아 한잔은 고우에게 건넨 신노스케는 손을 흔들고 먼저 휴게실을 나섰다.
 
 “일단 마시고 다른 곳에서 기다려.”
 “커피 땡큐. 일 열심히 하고.”
 
 오냐. 퇴근 후의 일정이 잡히자 괜히 일할 맛이 난다. 기지개를 켜고 자리로 돌아간 신노스케는 잊고 있던 핸드폰이 번쩍이는 것을 뒤늦게 발견했다. 들어 올려 액정을 켜자 고우에게서 왔던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도착해있었다.
 
 [일 끝내고 연락 주기~ 마하의 스피드로 끝내고 파이팅♪]
 
 문자를 읽을 뿐인데도 고우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가벼운 이모티콘으로 답장을 보낸 신노스케는 핸드폰을 엎고 처리해야 할 업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렇게 집중했을까, 넥타이를 조이고 정신없이 글을 써 내려가던 신노스케는 문득 열심히 울리는 핸드폰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이미 몇 번이고 울렸던 듯 이내 소리가 멈춘다. 펜을 내려두고 핸드폰을 켜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전화 표시보다 시간이었다. 이미 6시가 지나있었다. 눈을 의심하게 하는 숫자를 보자마자 깜짝 놀라 예상되는 부재중 전화의 장본인에게 전화를 건 신노스네는 식은땀이 흘렀다.
 
 “미안! 벌써 이렇게 됐을 줄이야, 이제 퇴근해!”
 [어쩐지 전화 안 받더라니. 너무한 걸 신 형님?]
 “아, 진짜 미안. 어디로 갈까?”
 [문자로 보낼게. 다들 기다리다 지치겠어.]
 “얼른 갈게!”
 
 전화를 끊고 겉옷을 챙겨 밖으로 뛰어나간 신노스케는 몰아치는 바람에도 춥다 생각하지 않았다. 너무 급한 탓에 차에 타서도 냉랭함보다는 어서 가야 한다는 생각에 열이 올랐다. 곧 도착한 문제에 찍힌 장소는 서에서 좀 먼 곳에 위치한 파티룸이었다. 네비게이션에 위치를 찍고 액셀을 밟은 그는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운전하기 시작했다.
 장소에 도착하자 주차장에서는 신노스케를 마중 나온 고우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완벽하게 주차를 마치고 서둘러 차에서 내린 신노스케를 보며 고우는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인다.
 
 “늦었어, 오늘의 주인공이 지각해 버렸네.”
 “너무 집중했나 봐. 다들 도착해 있지?”
 “물론. 신 형님이 꼴찌야.”
 
 주섬주섬 뒤늦게야 겉옷을 입고 고우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겉옷을 입은 게 무색하게도 따스한 공기가 그들을 맞이한다. 한 층을 올라서고 주위를 둘러보던 신노스케는 이내 한 방문 앞에 뚝 멈춰선 고우와 부딪히고 말았다.
 
 “여기야?”
 “응. 직접 열고 들어가시죠!”
 “……!”

 그러지 뭐. 얼떨떨하게 문고리를 잡고 돌린 신노스케는 문을 열자마자 확 밝아지는 시야에 순간적으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생일 축하해!”
 “생일 축하한다, 토마리!”
 
 눈을 껌뻑이며 빛에 익숙해지려고 하는 것도 잠시, 귀를 찢을 듯한 폭죽 소리와 시끌시끌한 생일 인사에 신노스케는 멍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안쪽을 가득 채운 서의 동료들뿐만이 아니라 하야세, 특상과 인원들까지 빠짐없이 방을 채우고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와줄 줄은 몰랐다. 아예 모르던 건 아니지만, 실제로 사람을 보고 나니 몰려오는 기쁨은 말로는 하지 못할 벅참을 안겨주었다.
 
 “다들 감사해요.”
 “……겸 크리스마스 파티긴 하지만, 1부가 신노스케의 생일 파티라 이 말이지!”
 “역시나 그런 건가요.”

 옷타의 말은 뻔했어도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함께해도 분리해 챙겨주기 위한 그들의 노력이 느껴져 여전히 신노스케는 감동하고 있던 차였다. 방안으로 들어서 이런저런 이야기꽃이 피는 걸 보며 조용히 따라 들어온 고우는 그런 신노스케를 보며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이 파티를 생각해 낸 건 고우였다. 매일매일 일에 치여 제대로 얼굴도 못 보는 신 형님이 조금이라도 더 즐거운 생일을 보냈으면 한다는 마음에서 시작된 파티다. 이 이야기를 꺼내고 준비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흔쾌히 파티에 오겠다고 해준 특상과 인원들과 신노스케가 없을 때를 틈타 하나씩 초대를 한 경찰들까지.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저쪽에 쌓여있는 게 전부 토마리 선배 선물이니까요!”
 “우와, 진짜냐.”
 “트렁크에도 안 들어갈 것 같지? 알아서 잘 가지고 가라고!”
 
 반짝이는 트리 옆에 만만치 않게 쌓여있는 선물더미를 훑어보던 신노스케는 크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금세 다른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넓은 식탁에 쌓인 음식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하자 시간이 흐르는 건 순식간이었다.
 내일 근무자인 동료 경찰들은 자정이 되기 전 먼저 파티를 떠났다. 다시 한번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남기고 나가는 그들과, 저녁 당직을 마치고 퇴근한 다른 경찰들이 교대로 하나둘 파티장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파티는 이제 시작이라는 듯 떨어진 음식을 사 들고 오는 그들은 마치 천군만마와 같았다.
 
 “카운트 다운 할까?”
 “좋지. 파티 2부 시작을 기념하여!”
 
 생일은 충분히 즐겼다. 과분할 만큼 많은 사람과 축하, 선물을 받았다. 이제는 다가온 크리스마스를 즐길 때였다.
 
 “3, 2, 1 ―”
 “메리 크리스마스!”
 
 일제히 카운트에 맞춰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친 그들은 각자 손에 들고 있던 음료를 높게 들어 올렸다. 밤이 깊었지만, 파티의 열기는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이제 파티의 주인공은 신노스케 자신이 아닌 모두였다. 한껏 들뜬 사람들을 뒤로하고 잠시 바람을 쐬기 위해 바깥으로 나온 그는 계단에 걸터앉았다. 밤공기가 역시 꽤 찬 편이다. 멍하니 밤거리의 불빛을 바라보고 있자 문득 볼에 닿는 따스한 무언가가 정신을 돌아오게 만들었다.
 
 “자. 밖은 추우니까.”
 “너도 바람 쐬려고?”
 “신 형님 따라서 나왔지 뭐.”
 “하하. 고마워.”
 
 뺨에 닿은 건 데워진 커피였다. 이런 날 더없이 마시기 좋은 음료일까, 조금 들어갔던 술이 깨는 기분이다. 신노스케의 옆에 앉은 고우는 몸을 웅크린 채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람들이랑 노는 건 재밌지만, 역시 피곤하달까.”
 “피곤하면 먼저 가도 괜찮아.”
 “그 정도까진 아냐.”
 
 별 거 아닌 말을 주고받으며 한참을 바깥에서 기다리던 신노스케는 문득 또다시 울리기 시작한 핸드폰을 확인했다. 얼른 들어오라는 문자다. 바로 앞인데 나와서 얘기하긴 추웠나, 자리에서 일어난 신노스케를 따라 일어난 고우는 퍼뜩 팔을 잡아 그를 세웠다.
 
 “응? 왜?”
 “맘에 들어, 이 파티?”
 “당연하지. 너무 마음에 들어. 이렇게 화려하지 않아도, 마음 써준 건 더더욱.”
 “그럼 내년에도 같이 챙기자.”

 살짝 발을 들어 볼에 스치듯 입술을 맞춘 고우는 장난스레 웃어 보였다. 생일 축하해, 그리고 메리 크리스마스, 신 형님. 둘만의 시간에 조용히 들려오는 말이 아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자연스레 손을 잡아 고개를 끄덕인 신노스케는 마찬가지로 웃어 보였다. 일부러 느린 걸음으로 고작 몇 걸음의 거리를 질질 끈 둘은 그 누구보다 행복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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