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가면라이더 에그제이드의 12화 관련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 외의 스포일러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 해당 연성의 시대적 배경은 본작 크리스마스를 지나고 모든 게 끝나고도 다시 겨우 안정적으로 맞이한 크리스마스이브입니다.
그만한 사람들이 모이면 크리스마스 같은 날도 꽤 화기애애하게 보내지 않아요? CR 자체의 알려짐은 아니었지만, 겉으로 모여있는 사람들의 조합을 알고 있는 동료 간호사나 의사들은 그런 물음을 던지고는 했다. 꽤 의외의 조합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이제 조금은 옛이야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은 쉽게 적응하고, 쉽게 안정된 숫자의 사람들을 받아들이곤 했다. 쿠죠 키리야는 그 물음에 어깨를 한 번 으쓱여 보였다. 이번에는 어떨지 모르겠네요~. 우리 소아과의 분의 의향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지? 넉살 좋은 웃음기가 한 번. 에무는 아직 안 끝났어? 하며 뒤에 따라오던 파라드가 손을 흔들어 가벼운 인사를 건네며 타박타박 아이 같은 걸음으로 지나감을 이었다. 소아 병동 안의 장식이 이리저리 반짝이고 있었다. 이번의 선물은 뭘까? 글쎄다. 에무한테 미리 물어보는 게? 복도를 가로지르는 시시콜콜한 대화. 병동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 이질감투성이의 남자 둘이 제 2 진료실의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아직 안 끝났어? 아, 이제 가려고 했어요. 황급히 일어나다 앞으로 넘어질 뻔한 그를 파라드가 겨우 잡아 일으켰다. 오늘도 기분은 꽤 괜찮은 모양이지. 눈치를 한 번 살핀 키리야가 속으로 휴, 하고 한숨을 삼켜냈다. 한숨 돌렸군. 그들의 이런 CR로의 퇴근길 안내는 이번을 위해 특별히 기획된 행사 아닌 행사였다.
어떠한 문제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전뇌구명센터, CR의 크리스마스는 평범한 편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몇 개월 전부터 작년의 `그` 크리스마스를 떠올리게 되는 계기가 주어지기만 하면 언제나 표정을 굳히지 않는 호죠 에무의 표정이 무어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지니 가급적 좋은 일만, 밝은 것만 하기에 바쁜 덕이었다. 하물며 단 쿠로토의 존재가 CR에 언제나 함께하고 있으니 당사자들은 아무렇지 않더라도 두 사람의 공통분모인 그, 호죠 에무의 눈치를 한 번 살핀 덕이었다. 아무리 두 사람의 어느 정도 관계가 바뀌었다고 한들 다시는 그런 경험을 하고 싶어하지 않을 거라는 점에서는 쿠죠 키리야는 마음속 깊이 공감했다. 애초에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복잡한 표정으로 쿠로토와 저를 바라보던 그 시선이 영 잊히지 않았다. 하지만 충분히 이해하지. 누가 자신을 죽인 놈이랑 지금부터 영 내키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사귀고는 있습니다~.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여주겠느냐고. 이제 아무런 말도, 눈치도 보지 않는 게 도리어 대단한 일이었다. 그럴 수 있지. 그럼, 그럼. 에무가 그렇다면야.
그렇게 긍정을 하는 와중에도 엄연히 제대로 보존되어 있는데 말이지. 같은 망언을 터뜨리고 있으니. 뽀삐삐뽀빠뽀와 파라드가 2개월 전부터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니, 마니 이야기를 한 끝에 그와 파라드. 두 사람이 돌아오는 길에 눈치를 살피는 것을 1단계. 신작 게임을 준비하는 것으로 2단계로 준비하여 기분을 완화시키는 방법을 정했던 것인데 나름대로 성공적인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정리만 하고 올게요! 하는 에무를 데리고 오는 것은 파라드의 담당으로. 돌아온 그가 확인을 위해 CR에 먼저 고개를 들이밀었다. 준비는 잘 되어가고~? 응! 에무는? 기분 괜찮아 보이니까 바로 선물을 줘버리는 게 좋겠는데. 어이, 신님. 뽀삐에게로 향했던 시선이 쿠로토의 쪽으로 홱 옮겨졌다. 화면 하나의 너머에서 자신을 현실로 끌어낸 그가 후, 하고 숨을 뱉어냈다. 언제나 번거로운 일을 맡긴다는 생각은 안 드나?쿠로토의 말에 키리야가 옆구리를 콱 팔꿈치로 찔렀다.
"어이, 신님. 지금 누구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는 줄 알아?"
"그 크리스마스에 남의 가정사를 캐낸 건 네 쪽이 아니었나?"
"하이고, 그러길래 착하게 좀 살았으면 자신이 거기까지 갈 일은 있었냐고? 제대로 한 번 따져볼까?"
"호, 감히 이 내게 도전하는 건가?"
큰 키로 고개를 슬 쳐들어 아래로 내려다보는 것은 분명 속을 긁기 위함이었다. 허, 하고 어이가 없다는 듯 토해지는 숨이 일었다. 손가락으로 이거 봐라, 이거. 하는 것처럼 삿대질을 한 키리야를 보며 쿠로토가 픽 조소를 터뜨렸다. 정말로 이렇게나 사소하게 틀어지는 사람들의 사이. 오히려 무언가 바뀌었다는 게 이상하다면 이상할 사이임이 분명함에도 그렇기 때문일지 두 사람의 관계는 그 1년간 단어 자체가 바뀌었던 게 우스울 정도로 극적인 변화였다. 키리야의 따가운 눈초리에도 불구하고 쿠로토는 특유의 웃음을 터뜨리며 혼자 팔짱을 꼈다.
"아무튼,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자비다. 새로운 게임을 하사하도록 하지!"
"정말 쓸데없는 말 하나씩은 꼭 붙이지 못해서 안달이시지 않습니까, 신님~?"
의자의 등받이를 마주하며 거꾸로 앉아있던 키리야가 한숨을 내쉬며 빙그르르 한 바퀴를 돌았다. 하여간 싸우지 말라니까! 뽀삐삐뽀빠뽀의 목소리에 네이, 네이, 하고 대답한 그가 몸을 느릿하게 일으켰다. 의자는 한쪽으로 주욱 빼어둔 그가 하나하나 돌아오는 사람들을 맞이했다. 나도 왔어! 하는 니코의 목소리에 유이한 여성진 둘은 가볍게 손바닥을 짝 맞대었고, 타이가는 조금 이따가. 하는 시간의 알림까지 확보했다. 저 왔어요. 하고 파라드를 팔에 거의 매달고 온 에무가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빛이 사라지는 수준이었던 눈이 손에 들린 게임으로 시선이 옮겨갔다. 이거 겐무가 새로 만든 거래. 지금 해봐도 되나요?! 천재 게이머 에무가 우리를 살렸다. 암묵적인 분위기에 버그스터―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3인방이 눈치껏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 후의 크리스마스 파티는 화기애애한 그대로였다. 히이로가 케이크를 잘라 나누어주고, 음식은 주문한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아이들이 먹을 법한 것들이 주가 되었다. 파라드와 뽀삐, 단 것을 좋아하는 히이로의 취향을 고려한 덕이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편식을 하는 건 아니었으니. 분위기에서 뒤로 한 걸음 물러난 키리야가 정신도 없지. 하고 중얼거렸다. 작년 이맘때에는 댁도 이렇게까지 미친놈 같아 보이지는 않았는데. 노골적인 말에 쿠로토가 시선을 옮겨 그를 내려다보았다. 시대가 내 재능을 따라오지 못하니 신의 재능을 가진 자로서 이해해주지 못할 건 없지. 알콜이 가볍게 첨가된 샴페인은 이제 데이터로만 이루어진 몸으로는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맛도, 분위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키리야는 그러십니까, 네이. 네이. 하고 언제나의 반응으로 넘겨낼 참이었다.
“아니면, 예전처럼 부드럽게 연기라도 하는 편이 취향이었나.”
무슨 소리래. 하는 표정으로 홱 시선을 옮기자 워낙에 많은 일이 지나 아득할 정도로 부드러운―이제 와서 생각하면 단 쿠로토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다는 것을 주변이 믿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수 있을 정도로―낯을 드리운 쿠로토를 보며 그가 어정쩡한 표정을 했다. 원한다면 어렵지는 않지. 아, 자신 지금 소름 돋았어. 그가 자신의 팔을 문지르며 과장될 정도의 숨을 뱉었다.
“나는 이제 댁한테 그런 모습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니까.”
“유감이군.”
쿠로토는 어깨를 한 번 으쓱여 보였다. 아마 긍정했더라면 서로를 죽일 듯 굴더라도 어느 감정을 인정하며, 무엇이라 이름할 수 있는 관계의 주인을 위하여 ‘신의 은총’ 따위를 뱉더라도 그깟 연기 몇 자락을 거부할 남자는 아니었다. 그는 꽤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으므로. 하지만 키리야는 여전히 홀로 제 소름 돋은 팔을 문지르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입꼬리가 픽 움직였다. 하여간 단어가 바뀌어도 달라질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저 서로를 묶어두는 수준에 그칠 뿐일 이야기
“유감이 아니라 어쨌든 댁은 댁, 자신은 자신.”
그러니까 이 미쳐 돌아가는 관계에서도 제대로 눈을 보고 있을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노골적인 표현에도 둘 중 그 누구도 반박하지 않았다.
“우리의 관계라는 게 연기로 탈 정도의 가벼운 무게가 아니라고요, 전 사장님?”
어떤 놈들이 죽고 죽어가면서 이러고 있느냐는 말이지. 반쯤은 자조가 섞인 말인 것도 같았지만, 분위기는 평이했다. 쿠로토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키리야는 익숙하다는 듯 하여간, 하며 시선을 옮겼다. 두 사람만이 동떨어진 공간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은 온데간데없이 종이 울렸다. 크리스마스이브는 여전히 시끌벅적한 분위기였다. 댕, 댕, 댕, 의미 없는 시계가 울렸다. 밤이 지나 자신의 기일로 넘어가는 시계를 바라보던 키리야가 후. 하고 숨을 골라냈다.
“Merry Christmas?”
쿠로토가 샴페인을 반 정도 마신 잔을 그에게로 기울였다. 어울리지도 않게. 키리야는 거의 빈 잔을 툭 부딪쳤다.
"자신은 전~혀 메리하지 않거든요?"
그렇게 만들어주고나 말해봐라. 키리야가 유리가 부딪치는 소리를 뒤로하고 마저 잔을 비워냈다.
